Tiny Fingers Crossed

-형은 어디서 왔어요?

-내 고향은, 그러니까, 좀 먼 곳이야.

 

형은 꿈이 대왕 인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인어들 중에 최고, 대빵, 짱이 되는 것. 멀쩡하게 생겨서, 멀쩡하게 살고 있으면서, 이상하게도 꿈만 물을라치면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다. 형이 동네에서 알아주는 백수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남는 게 시간뿐이라는 푸념을 늘어놓는 걸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얼빠진 소리만 해대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떠돌이마냥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동네에 살게 되었다는 것도,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형도 마을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곧잘 지내곤 했다. 여간 미운 게 아니었다, 내 마음도 잘 모르면서.

 

-맨날 그렇게 얼버무리지 말고.

-말했잖아, 바다.

-됐어요, 말을 말지.

-푸른 소금이 나는 곳.

 

 

Hindsight

전정국 X 민윤기

 

 

이상하게, 그 형과 관련된 경험은 죄다 집에 돌아 와 떠올리면 이상한 경험이고는 했다. 대화도, 행동도, 무엇 하나도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형이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추상적인 대답 때문이었다. 콩나물 한 봉지를 사면서도 아주머니가 주고 싶은 만큼 주시면 돼요, 하고 말하는 바보 멍청이가 어디 있냐는 말이다. 어딘가 살짝 핀트가 엇나간 사람 같기도 했지만 형이 말한 것은 집에 와서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가 되고는 했다.

 

자신에 대해서 뭔가를 숨긴다는 것도 그 나름의 분위기를 풍기는 데 한 몫 했다. 내 마음은 알지도 못하면서 언제나 들뜨게 만드는 말만 늘어놓는 형이 여간 미운 게 아니었다. 그 옷 못 보던 거다, 예쁘네. 하던 형은 내 마음도 모르면서 예쁜 사람 취급을 했다. 허여멀건 그 손가락으로 톡톡 내 얼굴을 두드리면서,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보면서 해사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도, 그 손가락에도, 바다가 있었다. 언제나 동경하던 그 놈의 바다를 닮아 있었다.

 

사람들은 함께 길을 걷는 우리를 보면 형제 같다고 말했다. 정작 스쳐 지나고 나면 이내 기억하지 못하면서.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그리고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무엇도 모르면서 이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형은, 사랑하면 닮는다던데, 너 혹시? 라는 말 이후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보다도 앞에서 어떤 대답을 할 줄 몰라 입을 꾹 다문 채 얼버무리는 내가 너무 미웠다.

 

 

처음 만난 것은 어느 비 오는 날 밤이었다. 동네에서 유명한 큰 손인 우리 엄마는 우리 식구들 입을 다 합쳐도 입이 네 개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등학생은 많이 먹어야 키가 쑥쑥 큰다는 핑계로 부침개 10판을 부쳤고, 아니나 다를까 배가 터져라 먹고도 손도 못 댄 3판이 접시에 남아 있었다. 엄마는 귀찮다는 나를 문 밖으로 떠밀며 얼마 전에 이사 온 옆집 총각한테 갖다 주라고 했다.

 

문을 똑똑- 두드리고 초인종까지 눌렀지만 나오지 않아 현관 문 앞에 두고 가려던 찰나, 문이 벌컥 열리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마치 비를 맞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헤- 벌리고서는 창밖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그 모습을 기억한다, 아직도. 그 모습은 비를 처음 보는 사람 같기도 했고, 비가 오는 그 밖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으려는 사람 같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옆집 사는 사람인데요,

-, .

-이거 부침개예요, 데워 드세요.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접시를 빤히 바라만 보던 눈은, 창밖을 바라보던 눈과 닮아 있었다.

 

-좀 받으세요, 팔 떨어지겠어요.

-, 팔이 떨어지면 안 되죠.

 

멍한 눈이었다. 이상한 사람이다, 대답도 반응도, 무엇보다 그 눈이,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제야 떠올리면 그냥 동네 백수의 어쭙잖은 현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래저래 하는 짓으로 보아 못 배운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건 확실했다.

 

 

또 어느 비 오는 날 밤이었다. 비 오는 밤이면 형의 눈동자가 생각났다, 눈알을 또르륵 굴리는 소리만 온 방안에 가득 찰 것만 같은 고요함이었다. 동네에서 유명한 술고래인 우리 아빠는 온 방안에 고요함을 다 깨부수며 집으로 들어 왔다. 언제라고 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비 오는 날이면 특히 더 그랬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문을 부수려하는 그를 부정했다.

 

감히, 그래, 내가 감히 그를 부정했었다. 창문을 넘어 밖으로 탈출했다. 빗물이 거짓말처럼 손에 닿았고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나를 금방이라도 옥죄는 손을 피하려 차가운 땅 위에 버려진 듯이 가만히 고목처럼 서 있기는 싫었다. 발걸음이 때마침 옮겨진 것은 운명이었을는지도 모른다,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하찮게도 내 발은 겨우 한 번 만난 옆집 형의 집 앞에 다다른 채였다. 역겨운 삶이다, 차가운 빗물이 내 눈을 고요히, 동시에 소란히 씻어 내려갈 때, 초인종을 눌렀다.

 

흠뻑 젖은 채였지만 당황하지 않은 눈으로 나를 안으로 들였다.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이어서, 그만 숨을 잠깐 참고 말았다. 공기가 맑고 온도는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눈물이 마를 때쯤, 그는 내게 이름을 물었다.

 

-정국이에요, 전정국.

-, 너였구나.

-?

 

울음이 싹 가시는 말이었다, 어딘가 앞뒤가 뚝 잘린 듯한 그 말에 나는 아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를 알고 있었던 걸까, 되물었지만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냥 피식 웃는 그 사람에게 나는 왜인지 더 이상 캐물을 수가 없었다. 형 이름은 뭐예요, 하고 묻는 내 모습이 분명 풀이 죽은 채로 가출한 고삐리처럼 보였을 것만 같았다.

 

-내 이름?

-.

-민윤기야.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잠깐 고민하는듯하다가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걸어 왔다. 말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조금은 느긋한 말투로, 모든 것을 따뜻하게 덮어줄 것만 같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밖에 비 많이 온다, 맞지?

-, 엄청 와요.

 

히터 온도를 조금 높이더니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본 그의 눈은 검푸른 빛이었다. 바다를 닮은 눈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짠 내가 생각나는 건 아니었지만, 깊고 어두웠지만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직접 보니까 신기하네.

-나 말예요?

-그래 뭐,

 

어리둥절한 내 표정에 당황한 것인지, 이내 잠깐 뜸을 들였다 다시 덧붙여 말했다.

 

-비 오는 것도 그렇고.

 

포근한 대화였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가족과도 같은 대화들. 흔한 내용도 아니고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지만 그 목소리만은 완벽히 일상적인 것이었다. 세상에나, 그냥 가만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늑해졌다. 손을 잠깐 꼬물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무신경한 목소리로 툭 내뱉는 말은, 또 결코 흔치 않은 것이었다. 그 목소리도, 그리고 그의 눈빛도, 모든 것이 아득해졌다.

 

-난 말야, 부드럽고 검푸른, 그런 곳에서 왔거든.

-바다 말하는 거예요?

 

-물론 못 믿겠지만.

 

인간의 시초가 돌고래라는 이야기를 책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귀 뒤편에는 퇴화한 아가미가 있기도 하다고, 하는 식의 믿거나 말거나하는 식의 소문들이 많았더랬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믿는 게 이상한 거지, 그렇게 허무맹랑한 소리만 늘어놓는, 그의 눈을 믿었다. 그 눈을 보면, 그의 이야기가 결코 거짓은 아닐 거라는 믿음이 들게 했다. 그 진심을 비추는 창이 언제나 뽀득뽀득 닦여 있어서, 나는 그 틈으로 그를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해맑은 눈으로 얘기하는 걸 보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애초에 그 말은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실은 믿기 힘든 것이었으나 현실은 믿기 싫은 것이었다. 엄마는 그 날 이후로 집을 나갔다. 하루 걸러 하루 집에 들르던 아빠는 이제 일주일에 한번 꼴로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려는 듯 집에 들어오고는 했다. 물론, 이미 집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온기랄 게 없었지만. 학교를 마치고서 차가운 집보다는 그 옆길로 새는 일이 허다했다. 적어도 내가 보일러를 켜지 않아도 그곳은 따뜻했고, 내가 불을 켜지 않아도 이미 그곳은 밝았으니까.

 

-, 저 왔어요.

-자주 오네, 집에 무슨 일 있어?

-안 울잖아요, 요새는 다 괜찮아요.

-정말이야?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떠 보았지만 잠깐이었다, 안 괜찮아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 때의 나는 어쩔 줄을 모를 때가 많았다. 보호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치기 어린 고등학생을 미치게 하기에 충분한 설정이었으니까. 19, 누군가를 보호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지켜야 했으니, 괜찮다는 말 밖에는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할 일이랄 것도 없었고, 애초에 공부에는 손을 놓은 지 오래였으니, 입시 스트레스랄 것도 없었다. 그저 매일같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형 집 소파에 드러누워 내 집 마냥 티비를 켜놓고 형을 보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으레 그래 왔다는 듯이 벌러덩 드러누운 찰나, 집에 놀러 온 손님한테는 맛있는 걸 차려주는 게 예의라고 배웠다며 떡볶이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통에 형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처음 보게 되었다. 저 형이 원래 손이 저렇게 하얬었나. 내가 이 상황에 가진 의문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 그러니까, 예쁘더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살짝 흔들리는 그 머리칼도, 그리고 자꾸 더러운 상상을 하게 되는 목에서부터 쩔어주는 다리와 허리선까지도, 그냥 몸 하나하나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야릇했다, 낯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잠깐 붉어진 얼굴을 하고 나쁜 상상을 하고 있을 때쯤, 그가 나를 급히 불렀다.

 

-, 뜨거!

-조심 좀 해요, 요리 처음 하는 사람처럼 유난을 떨어.

 

속상했다, 나이가 몇 갠데 이런 실수를 하는 거냐며 괜히 화를 냈다. 약간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서는 샐쭉 입을 내밀고 변명을 늘어놓는 그 표정이 그 나름대로 귀여웠다. 너보다 많아도 한참 많지, 이건 실수야, 실수.하고는 이내 수줍게 웃었다. 어떠하냐고 내게 물어 오는 것은 의미가 없을 만큼, 나는 그 순간만큼은 집중력이 최고에 달해 있었다. 그 웃음에 집중했다, 세상에 단 둘만 오롯이 남은 것처럼. 언제까지나 그렇게 곁에 있어줄 것처럼. 그의 웃음은 수줍고도 겸연쩍은 것, 동시에 영원한 것, 그 자체였다.

 

불에 살짝 그슬린 정도일 줄 알았건만, 가스레인지에 잠깐 닿은 것치고는 피부가 너무 바알갛게 달아올라 있어서 떡볶이를 꼭 만들어주고 싶다며 고집을 부리는 그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그를 소파에 털썩 주저앉혔다. 생각보다 힘이 없었다, 그리 세게 민 것도 아니었는데, 툭 밀자마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저렇게 힘없이 밀리는 사람이라면, 눕혀놓고 강제로 키스를 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힘을 많이 써야할까, 하는 식의 쓰레기 같은 생각만 가득했다. 손을 덥석 잡아 차가운 물에 넣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온도에 적응한 듯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난 더 차가운 게 좋은데.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영화 채널 쯔음에 손가락이 멈췄다. 때마침 기상천외한 체위를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격렬한 정사씬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현명하고도 이성적인 고등학생이라고 나름 자부하고 있었으므로 재빨리 형의 눈치를 살폈다. 형의 표정이 굳었다. 글쎄, 고삐리랑 이런 영화를 봐야 하나 싶은 생각에 지은 표정이라고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형이 지은 표정은, 마치 태어나서 처음 그런 광경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꼭 그런 눈으로 봐야겠어요?

-저게 뭐람.

 

고등학생은, 남자 고등학생은, 버러지 같은 생각뿐이었다. 막 저렇게 박는 건 본 적 없어서 그러는 거죠?그딴 질문이나 늘어놓는 것으로 보아, 그래, 내가 입으로 뱉고도 아차, 싶었다. 박기는 뭘 박아, 하며 핀잔을 주는 형의 모습에 괜히 낯이 붉어졌다. 품었던 시간보다 품지 않았던 시간이 긴 내가 가졌던 아주 사소한 의문이었다. 결국 모든 게 질질 흘러내리고 마는 그 영상미에 우리 둘은 괜히 어색한 느낌만 들었다. 둘 사이에는 묘한 공기가 가득 찼다.

 

-, 자꾸 물어서 미안한데, 몇 살이라 그랬죠?

-몰라도 돼.

-형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

-, 어른이고,

-글쎄.

 

-, 섹스 해 본적 있어요?

 

나는 이 때까지의 형이 살아온 것에 대해 묻는 게 아니에요, 오늘, 아니, 지금 이 순간의 당신에게. 나는 형한테 묻고 있잖아요. 늘 그런 질문을 들어 왔다는 듯이 눈을 느릿느릿 굴리지 말아요. ?근데, 섹스를 해야만 어른인 거야? 아니면 어른이 되어야만 섹스를 할 수 있는 거야?? 형은 원론적인 질문부터 되짚어 왔다. 이내 낯 뜨거운 단어를 먼저 입에 올린 것은 나였지만, 괜히 부끄러워졌다.

 

-난 모르죠, 아마 둘 다일지도.

-에이, 뭐야, 그럼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네.

 

섹스를 해야만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에요, 하고 말하기도 전에 형은 조금 더 정답에 가까운 말을 뱉었다.

 

-사랑을 하면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사랑 해 본적 있어요?

 

잠시, 망설였다. 잠깐 보였던 그 눈은 진실이 아니었다. 어쩌면 거짓말일지도 모를 그의 말이 들려 왔다. 귀에 들린 말은 너무 달콤한 것이어서 거짓이 아니었으면 했다.

 

-해 본 적은 없지만 한다면 너랑 해보고 싶기도 해.

 

흐릿한 눈빛으로 혀를 굴렸다. 그런 그를 마주하면 묻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바로 아득해져 이내 묻고 싶은 것이 온 머리를 가득 채웠다. 나를 좋아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대답을 예상할 수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나랑 섹스하면 어떨 거 같아요?

-무슨 뜻이야,

 

손으로 저지하는 그를 모른 척 하고서 입을 틀어막았다. 더 이상의 짝사랑은 없어 이렇게도 추하게 사랑을 할 뿐이었다. 겨우 손아귀에서 힘이 풀린 그의 목을 감싸 쥐었다. 침이 입 옆으로 새어 나갔다. 턱이고 입술이고 입 근처, 혀가 닿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묻어났다. 그만큼 급했고 거칠었다. 영화에서 질질 흘러내리던 것과는 다른 맑고 옅은 것이었다.

 

-어떨 거 같냐구요.

-좋겠네, .

 

글쎄, 혀를 끌끌 차지도 않고 이내 혀가 섞이어 들어오면서 나를 받아들이는 그 눈이 너무나도 또렷하고 맑은 것이어서 역겨웠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이 내게 묻고 있었다, 너는 어디서 왔니? 나는 바다에서 왔어.하고, 한 없이 더럽고 추해지는 기분이었다. 다급히 짐을 챙겨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 왔다. 축축하지는 않아도 온기 하나 없이 어두운 것이, 바다와 닮아 있었다.

 

허겁지겁 도둑질 해온 첫 키스를 다시 홀로 느꼈다. 되뇔수록 역겹고 끈적거리는 것들이었다. 미끌거리다 못해 이내 번져버려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볼이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르고, 입안은 괜히 까끌해졌다.

 

 

이미 어른이 되기도 전에 누군가와 혀를 섞은 내가 감히 아빠를 부정했다. 그 몸으로 어디에 굴려져도 더 더러워지지는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도, 아빠와 말을 섞는 것은 역겨운 일이라는 듯이 경직된 표정으로 그의 폭언을 견뎌냈다. 폭언뿐이지만 단 한 번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그를 위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복수라고는 나를 부수는 것밖에는 없었다. 나를 실망시킨 당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유일한 것인, 나를 더럽히고 싶었다.

 

-, 문 좀 열어주세요.

-무지막지하게 쳐 들어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려다 참았어요.

-너를 어쩌면 좋을까.

 

문을 벌컥 열면서 그가 늘어놓은 말이었다. 무언가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싫었다. 싫었다, 아니,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아했다.

 

-뭐가요?

-모르겠어? 아직도?

 

잠깐 그의 표정이 미묘했다, 이내 그 때의 대답을 떠올린다. 사랑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한다면 나와 해보고 싶다는 그 말을 간절히 기억한다. 마치 밧줄이라도 되는 양 꽉 잡고 늘어진다. 너랑 사랑할 수는 없어, 미안해.사랑은 섹스와 다르다는 말을 하고서라도 그를 탐하고 싶었던 걸까, 언제였는지도 모르는 과거의 나는 그를 탐한다. 그리고 이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그 앞에서 울고 만다.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참 많아.우는 건지 말을 하는 건지 잘 구별조차 가지 않는데도, 인어가 내게 묻는다, 정국아, 내가 어디에서 왔을까?나는, 나는 잔인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바다?

-아니, 틀렸어. 나는 너에게서 왔어, 정국아.

단 한 마디만으로도 눈물이 무럭무럭 차오른다. 너는 내 바다잖아.이내 활짝 웃는 인어는 물거품이 되었고, 이내 나를 기다린다.

 

 

-너를 위해 세상 사람들이 이름이라는 걸 만들었는지도 몰라.

-그건 무슨 소리예요?

-너를 더 예쁘게 부르려고.

-내 이름 별로 안 예쁜데.

-아니, --.

 

--. 하고 부르는 그 목소리는 날이 서게 만들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끊어내는 그 구절마다 내 심장이 그만 미어질 것 같아서, 그 차가운 눈으로 배시시 웃는 게 그만 너무 예뻐서, 또 욕심을 부렸다. 내 마음은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철학자 행세를 한다, 하고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나랑 사랑해 줄 거예요? 이렇게 묻는 마음은 어디까지나 치기 어린 것이었다. 이제 어디를 가도 나는 형이 생각나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표정이 몽롱했다. 사랑해 주겠다는 허락이, 그리도 방방 뛸 만큼 아득한 기쁨이었을까.

 

만약 지금 당장이라도 좋아요? 하고 묻는다면 확신에 차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을 이따금씩 상상해 본다. 이제야 겨우 묻는다, 너에게 간절히 묻는다. 그리고 내 고개를 이내 그의 목덜미에 파묻는다. 그 새벽의 빛은 너무 옅어서 내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게 했다. 다만 확신이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어루만지는 것이 형이라는 것, 그 뿐이었다.

 

-, 많이 기다렸어요?

-중요해?

 

아뇨, 안 중요해요, 우리, 지금, 세상에서 제일 야한 섹스를 해요, 하고 질끈 눈을 감고 그를 눕혔다. 나는 그의 옅은 허리를 팔로 감았다. 혀로 할 수 있는 가장 유치하고 나쁜 장난, 나는 금방이라도 다 먹어 해치울 것처럼 혀를 놀렸다. 손을 더듬어 불 켜진 스탠드를 끄려다 그만 대차게 밀어버리고 말았다. 어딘가 깨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도 모르고 숨소리만 내뱉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쁜 짓을 할 차례였다.

 

혀가 훅 밀고 들어 올 때, 나는 그의 니트가 다 늘어날 정도로 성급한 손길로 그를 벗겼다. 선물 포장을 뜯듯이, 마치 겉은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하던 어린 날처럼. 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페니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기술도 없이 아무 데나 박으면 아플까,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자꾸만 물거품이 되어 버릴 그를 상상하면 고민하는 것도 아까웠다. 이내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파도 참아요. 좋아하는 마음만 영원할 수 있잖아요.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었지만, 나는 내가 한 번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내뱉는 그의 숨소리와 신음소리를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것을 받아내고 맞춰내는 그였다.

 

혀에서 혀로, 그리고 이내 목덜미까지 내려왔다. 어깨까지, 그리고 점점 더 아래로, 아래로. 부끄럽게 솟은 그의 페니스에서 잠시 멈칫했다. 그는 악바리처럼 내 걸 꽉 쥐고 입에 가져다 물었다. 몇 번 빨아내는듯하다가 이내 멈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면 이내 눈이 마주쳐 미칠 것만 같았다. 뭔가 부정하고 싶은 눈을 하고서는, 한 번을 아프다는 말조차 없이 곧 죽을 사람처럼 간헐적으로 숨소리만 내뱉었다. 거기에다 대고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나는 그 순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우리 엄마를 기억해냈다. 그리고 이내 상스럽게 무너져버린 나의 도덕을 생각했다. 마주친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게 만들었다. 희뿌연 창문, 닦여있지 않았다. 이건 강간일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를 탐한 거였을까.

 

아니, 그는 좋다고 말했다. 분명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눈은 진실이었고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다, 똑똑히 기억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눈이었는데, , 분명 그랬는데. 지금 그는 눈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나는 눈이 흠뻑 젖었음에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구부정한 자세로, 손으로 그 얼굴 옆의 매트리스를 꽉 쥐어뜯으며 허리를 세웠다.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빠가 술을 마시면 안주 대신 입 밖으로 내뱉던 상스러운 말들. 나는 감히 내가 부정했던 그를 다시 끄집어내어 내게 투영했다.

 

하찮기 짝이 없었다. 씨발.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모든 나쁜 상상이 끝이 났고, 모든 사랑이 이루어졌음에도. 내가 그의 혀에 키스를 했고, 내가 그의 페니스를 세웠고, 내가 그의 모든 곳에 자국을 남겼음에도. 단순히 몽정으로만 끝났던 그 찌질한 꿈들이 현실이 되었음에도.

 

사랑하고 있음에 눈물이 났다.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은 이미 무의미한 것이었다. 기억해달라는 울부짖음도 이미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미 사랑하고 있었고, 이미 기억될 것이었다. 뼈마디가 붉은 그였다, 다리도, 허리선도, 그리고 야릇한 몸 선까지도, 상상만 하던 나쁜 일들 끝에서 그는 물거품이 되고 있었다. 세상에는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또 어른이 되었고, 피터팬처럼 내 그림자를 벗겨내던 그는 오히려 그의 속살까지 벗겨내려던 내 앞에서 물거품이 되었다.

 

일말의 의심조차 없는 종말이었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살아야 해.

-.

-그림자마저도 예쁜 아이였어, 너는.

-.

-눈 감아 봐.

-가지 마요.

-사랑해.

-가지 마요.

 

 

-정국아, 너도 이제 어른이 되겠다.

-...

-정국아, 내가 어디에서 왔을까?

-나한테서요.

-...

-내가 형의 바다잖아요.

 

 

이 파도가 내 남은 일생과 죽음을 지배할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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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슙총에 올렸던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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